CSR, ESG / / 2024. 10. 21. 21:53

[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왜 쓰는가?(교육 후기)

  기업의 ESG 담당자 모임이라고 해서 참석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다른 분들이 장기를 두는 사람이라면, 나는 장기판 위에 장기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만남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네트워킹에 시간 쓰기가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필요한 건 자원 연계가 가능한 협업인데 응원의 말 말고는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모임에서는 주로 평가 대응에 대한 고민이나 글로벌 동향을 나누는 게 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자연히 우리 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해서도,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소개되는구나' 더 솔직하게는, '내 일이 이렇게나 비중이 작구나.' 하고는 금방 잊었다. 

  그러던 내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강의를 듣기로 결심한 건 파타고니아 스쿨 덕분이다. 넓은 시야 안에 있을 때에만 내가 하는 일을 오랫 동안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 보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에 대한 교육을 들으면, 내 일을 어떻게 소구하는 게 중요할지,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알기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장기판의 장기말이라면 장기가 어떤 룰로 이뤄지는 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나. 가뜩이나 그 룰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꽉 찬 3시간 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와닿았던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유승권센터장님이 알려준 내용이 기본이겠으나 내가 덧붙인 생각들도 있다.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우려스럽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기록하는 게 내 공부에 도움되겠지. 이 글의 오류나 부족함를 떠나서, 이렇게 후기를 적게 만드는 이노소셜랩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길 권합니다. → https://insbee.co.kr/20

질문 1. 불황에도 ESG를 해야 하나? 

  길게 다루진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대목이었다. 센터장님은 짧은 답변으로 정리했는데, ESG 가 애초에 위기대응 전략에서 출발한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ESG가 금융권에서 강조된 키워드라고 했을 때, 투자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고자 하는 니즈가 배경에 있다. 불황이라고 해서 비재무적 가치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비재무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흐름을 다루는 강의 내용에서 이를 알 수 있었다. 

  글로벌 사우스에 기후위기의 여파가 집중된다는 주장을 흔히 접해왔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보면 글로벌 노스도 기후 위기 영향권 아래에 있다. EU와 미국은 공히 기후 재해, 재난을 맞닥뜨리고 있고(E), 난민에 대한 대응이 요구된다(S). 글로벌 사우스로 외주화했던 위험이 노스에도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온 것 같다. 따지면 한국도 글로벌 노스에 속하는데, 최근의 서울 열대야 기록 갱신(1907년 이후 최장)과 강원도 고랭지 배추 흉작1) 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EU와 미국은 국내 정치 대응을 위해서라도 기후위기를 무시할 수 없고,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블록 경제를 강화하는 흐름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그 블록에 들어가는 유도선 역할을 하는 게 탄소국경세(CBAM), 공급망 인권(CSDDD),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ESG/지속가능성 관련 정책/법안이다. CBAM에 따라 유럽에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유통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 유럽에 공장을 직접 짓게 된다. CSDDD에서는 아동/노예 노동에 대한 벌금으로 매출의 5%를 매긴다고 한다. 제조업의 순이익률이 많아야 18%라고 하는데 이는 순이익의 27.8% 가 날라가는 것.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에너지 및 기후 정책인 IRA은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등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해당 정책 기조에 근거하여, 2023년 한국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2.2%(1위)를 기록했다.2)

  재무적인 환경이 안좋아진다고 해서 비재무적인 관점을 경시하기에는, 글로벌 정치경제가 기후위기를 재무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산림 녹화에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국제 인증 기준에 맞춰서 산림을 조성한 후에는 종이, 목재 시장을 점령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미 신재생에너지 생산 세계 1위인 중국은 ESG가 담지하고 있는 재무적 기회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 주식의 외인 비율은 10월 21일 기준 42.54%로 국내 코스피 기준 42위이다(1위는 락앤락. 91.13% ㄷㄷ). 최근에 안 사실이라 부끄럽지만 1996년에 미국 증시에도 이미 상장을 한 상태라 한다. 그런 만큼 SEC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강의 이후에 유승권 센터장님이 "불황에도 ESG를 해야 하나요?" 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을 작성해주셨다.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 글이라 독자분들에게도 공유해봅니다. → https://mryoopm.tistory.com/2596740

질문 2. 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쓰는가? 

  센터장님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잘 쓰는 법 이전에 왜 써야 하는가를 질문하셨다. 영업관리를 할 때는 내 담당 대리점의 월단위, 분기 단위 매출 목표 달성을 왜 해야하는지 의문가진 적이 없다. 매출은 많이 내는게 당연히 좋은 거고, 어떻게든 대리점을 성장시키는 게 내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ESG 부서로 와서는 질문할 거리들이 많아졌다. 미우나 고우나 이 일이 너무나 좋은 이유다.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된 건, 한국은 아직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써야할 법적인 의무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2023년 기준 국내 시총 200대 기업의 83%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한다. 글로벌 단위의 수출 무역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쓸 필요가 없는데 그냥 쓰는걸까? 회사가 속한 산업군 안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곁눈질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걸까?

  강의 현장에서 나온 답변이 중에는 해당 기업에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나는 이런 목적이 보다 현실적이고 와닿는다고 생각한다. 마침 송길영씨가 쓴 『호명사회』를 읽고 있다. 조직 규모는 슬림화 될 것이고, 조직에 기대서 나를 설명하는 시대는 저물어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이러한 시절에 본인이 속한 조직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히 돈을 잘 벌고 복지 좋은 곳만은 아닐 것이다. 돈을 벌더라도 어떻게 버는지가 중요하고, 그 안에서의 자기 서사가 쌓여나가면서 본인의 이름으로 오롯히 존재하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닐까. 학폭 논란이나 성폭력 사건에 연루 된 연예인이 팬들을 잃는 모습을 자주 본다. 연예인보다 더 공적 존재인 기업의 입장에서, 본인의 부정적인 영향을 오롯이 알리는 노력은 고객이든 구성원이든 그 기업을 신뢰하고 사랑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보고서를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 이후에, 센터장님은 실무자 입장에서 고민해야 할 주제를 짚어주셨는데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첫번째는 '중대성 분석을 언제 해야하는가' 이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과 연계되어야 하므로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는 시점에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회사를 떠올리니 이해가 잘 됐다. 통신회사에서 AI 회사로의 Pivoting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중대성 분석에 AI 관련 내용이 빠져선 안될 것이다. 최근 AI Governance 구조/체계를 만든 것도, AI 기술 기반의 ESG 사업를 지향하는 것도 동일 선상에서 고안된 것이다. 이를 선언에 머물지 않도록 실체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다.  

SK텔레콤의 AI 거버넌스 구조

  두번째는 구체적인 수치에 근거한 보고서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보고서의 약점으로 '수치가 없다'는 점을 짚으셨는데, 유니레버의 자료를 보면 수치 정보로 빼곡하다. 예산이 없을 때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이 수치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일이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불황이라고 ESG를 멈춰야하는 건 아니겠으나, 조직 논리에 따라서 예산/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을 막기는 어렵다. 그럴 때에도 집중할 과업이 무엇인지를 짚어준 부분이 참 좋았다. 강의에 참석하 모 기업의 담당자 분도  N년차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는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도 적용되는 사안이라 기억에 남는다. 올해는 몇 개 센터에 우리 솔루션이 적용되었는가를 대외적으로 알렸다면, 내년에는 더 구체화해서 명 몇에게 행동중재지원이 제공되었고 이로 인한 효과도 정량적으로 명시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대기업일수록 조직의 PR 역량이 너무 뛰어난(?) 경우가 많기에, 담당자는 실체(정량적 효과성)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리마인드가 필요하다.  

질문 3. 어떤 ESG/지속가능경영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이번 강의를 듣게 된 또다른 이유는, 2025년의 ESG/지속가능경영 프로젝트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수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수치 대신에 들어가는 게 이미지다. 이는 개별 프로젝트의 성격과도 연관된다고 본다. 수치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가 누적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지속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밝게 웃고 있는 사람이나 자연 관련 사진을 넣게 된다. 아래는 지속가능경영 프로젝트 방향을 개괄하는 강의 자료이다. 

  ESG 데이터 주도 능력은 앞서 언급했으니 차치하고, '실무 부서 주도성 강화'란 키워드에 가장 눈길이 갔다. 단기적 이벤트가 아닌 중장기적 프로젝트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실무 부서와의 연계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 사업이 지금처럼 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협업 조직인 R&D 부서의 니즈에 맞는 사업 설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Vision AI 기술을 활용한 이 사업은 우리 회사의 본업과 얼마나 연계되어 있는걸까?

  현재의 구조는 ESG 조직이 사업부서(실무부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우리 회사라서 가능한 구조라 생각된다. 중장기적으론 회사 내 개별 사업 부서에서 ESG 사업/프로젝트를 직접 리딩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사업 부서와 이야기 해보면 항상 재무적 이슈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글로벌 기준의 가이드라인과 관련 없는 서비스나 제품은 자발적 동인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개인적으로 에누마 사례를 자주 복기한다. 대표분의 인터뷰도 보이는대로 챙겨보는 편이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에서 출발해서 모두를 위한 서비스가 됐던 주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가능성의 희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길이 뚜렷해지기를. 그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다. 

  끝으로 서두에 언급했던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본다. 많은 기업들이 1~2명의 ESG 담당자만을 두고 있다보니, 외부 평가 대응에 집중할수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준의 인력을 보유한 ESG 부서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장기말 운운할 게 아니라,, 이런 강점을 어떻게 레버리지할 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겠다. 인원이 많은 만큼 업무가 분절화되면서 ESG의 전체 그림을 놓치기 쉽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이노소셜랩의 강의를 매년 들어야겠다.  

1) "원해도 다 살 수 없는 먹거리의 시대가 온다", 시사인, 2024.10.1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111

2) "IRA 단맛 끝나나? 대미 투자 기업 ‘숨 고르기’", 시사인, 2024.10.04,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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